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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을 처음 상상했을 때, 우주는 나에게 질문이 되었다

by littlebasket 2025. 6. 29.

과학책에서 만난 사건의 지평선

밤하늘에서 시작된 질문 하나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습니다. 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그 빛은 말없이 수천만 년 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했습니다.
어른들은 그것을 “은하수”라 불렀고, 나는 그저 반짝이는 점들을 이어 별자리를 찾아내곤 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늘 하나의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저 끝에는 뭐가 있을까?’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이후 내가 과학과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그 호기심이 본격적인 충격으로 바뀐 건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텔레비전에서 블랙홀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였습니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
그 한마디는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빛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건, 인간의 모든 관측 방식이 무력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보이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 질문은 아직 어린 내게 철학과 과학의 경계선을 보여주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과학책에서 만난 ‘사건의 지평선’

중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과학책에서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습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로, 이 경계를 넘은 정보는 절대로 우주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이 문장은 마치 마법처럼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정보조차 사라지는 공간이 있다는 건,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모든 물리 법칙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지식은 접근 가능한 것’이라는 내 전제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경계 안에 들어간 나는, 이 우주의 어떤 존재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시간, 공간, 정보, 심지어 존재의 의미마저 뒤흔드는 개념.
그것이 내가 처음 블랙홀에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그 후 나는 사건의 지평선을 단지 과학 개념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한계를 상징하는 철학적 경계처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사건의 지평선을 단지 과학 개념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한계를 상징하는 철학적 경계처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자를 통해 존재를 입증하다

2019년,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사건지평선망원경(EHT)을 통해 M87 은하 중심 블랙홀의 ‘그림자’를 촬영했습니다.
나는 그 이미지를 보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검은 중심과 그 주변을 휘감는 빛의 고리.
그건 어떤 구체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것’의 시각적 상징이었습니다.

그 어두운 중심은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건의 지평선 안쪽입니다.
우리는 블랙홀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방출되는 고온의 X선, 강착원반의 형태, 그리고 시공간의 왜곡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확인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을 통해 존재를 입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우주에는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요.


성인이 되어도 계속되는 질문

나는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블랙홀은 여전히 내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침대에 누워 밤늦게까지 블랙홀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학술 자료 요약본을 읽기도 합니다.
물리학이 내 전공은 아니지만, 그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내 사유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특히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간 이후,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그 안에 있는 물체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순간 시간은 정지에 가깝게 느려지고, 중력은 무한대로 치솟습니다.
바깥 세계에서 보면, 그 물체는 마치 경계에 영원히 붙잡힌 듯한 모습으로 보이게 됩니다.
실제로는 안으로 떨어지고 있겠지만요.
이런 역설적인 현상들이 나를 계속 매혹시킵니다.


블랙홀은 나에게 ‘생각의 원천’이다

블랙홀은 단순한 천문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인류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는 블랙홀을 생각할 때마다 두 가지 감정을 느낍니다.
하나는 무한한 중력 앞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또 하나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영역을 탐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입니다.

과학은 블랙홀을 설명하려 애쓰고 있지만, 특이점에 도달하는 순간 지금의 물리학은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 때문에 블랙홀은 현대 이론물리학의 가장 큰 숙제이며, 양자중력이나 통일장이론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험장이 되기도 합니다.

블랙홀은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블랙홀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그 모순 속에 깃든 진실이, 나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블랙홀은 정말로 우리 우주의 탄생과 끝을 모두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중심의 특이점은 과거의 빅뱅과 닮아 있고, 언젠가 모든 것을 다시 빨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죠.
나는 아직 답을 모르지만, 그 질문을 갖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주는 충분히 나에게 값진 의미가 됩니다.